← 블로그 목록

오늘의 묵상 - 역대상 9장 35절-10장 14절

2026.09.16큐티와 묵상

찾지 않은 왕, 넘겨진 나라

본문: 역대상 9장 35절 ~ 10장 14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아홉 장에 걸친 명단의 끝에서 두 단어를 붙들었습니다. 마알(배신)과 에무나(신실함). 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마알이었고, 폐허에서 나라를 다시 세운 것은 아침마다 성전 문을 여는 사람들의 에무나였습니다.

오늘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담에서 시작한 그 긴 족보를 덮고 서사를 엽니다.

그런데 그 첫 장면은 기대하는 왕의 대관식이 아닙니다. 승리의 개선 행렬도 아닙니다. 길보아 산비탈에 엎드러진 시체들입니다. 아홉 장을 달려온 이 책이 첫 이야기는 패배의 이야기입니다.

신명기 역사(신명기~열왕기하)는 땅에 들어가는 데서 시작하지만, 역대기는 사울에게서 다윗으로 넘어가는 그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저자의 질문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의 질문 : 우리는 어떻게 그 땅에 들어갈 것인가?

역대기의 질문 :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서 계속 살 것인가?

그 답을 얻기 위해 저자는 실패한 왕 한 사람을 먼저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는 열두 세대나 이어진 족보에서 시작해서,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는 한 문장에서 끝나겠습니다.

1. 족보는 열두 세대, 왕조는 한 장 (9:35~10:7)

"35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주하였으니 그의 아내의 이름은 마아가라 36 그의 맏아들은 압돈이요 다음은 술과 기스와 바알과 넬과 나답과 37 그돌과 아히오와 스가랴와 미글롯이며 38 미글롯은 시므암을 낳았으니 그들은 그들의 친족들과 더불어 마주하고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39 넬은 기스를 낳고 기스는 사울을 낳고 사울은 요나단과 말기수아와 아비나답과 에스바알을 낳았으며" (대상 9:35~39)

어제 8장 29~38절에 나온 그 똑같은 족보가 여섯 절 뒤에 또 나옵니다.

8장에서는 베냐민 지파 이야기이지만, 여기서는 10장의 사울 왕권에 대한 이야기를 위하여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9장 35~44절은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에 켜지는 조명입니다. "자, 이제부터 이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족보의 길이를 보십시오. 사울에서 요나단, 므립바알, 미가, 비돈과 멜렉과 다레아와 아하스, 야라, 시므리, 모사, 비느아, 르바야, 엘르아사, 아셀, 그리고 아셀의 여섯 아들까지. 사울 이후로 열두 세대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38절은 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고 적습니다.

열두 세대. 예루살렘 거주. 이보다 든든한 시작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10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지니라" (대상 10:1)

두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도망하다가 엎드러지니라. 살기 위해 도망쳤지만 결국 적의 칼에 맞아 땅에 고꾸라지는 참혹한 결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도망친 자리가 곧 엎드러진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대상 10:6)

이 절이 오늘 본문의 첫 번째 충격입니다.

사무엘상 31장 6절의 원문은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함께 죽었다"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그의 모든 사람"을 "그의 온 집"으로 바꿉니다. "집"은 왕조를 뜻합니다. 가족은 남았습니다. 그러나 왕조는 끝났습니다.

"가문은 이어지고 번성했으나 왕조로서의 운명은 길보아에서 끝났다!"

그리고 이 패배의 아이러니를 보십시오. 하나님과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세운 목적은 블레셋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블레셋의 손에 죽었습니다. 사울을 쓰러뜨린 것은 활입니다. 그런데 활은 베냐민 지파의 자랑이었습니다(대상 12:2). 자기 지파가 가장 잘 다루는 무기에 자기가 맞아 죽은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삼상 8:19~20)

그들이 원하던 "우리의 싸움을 싸워 줄 왕"은 그 싸움터에서 스스로 칼 위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랑하던 그것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우리가 믿던 사람 때문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2. 다곤의 신전에 걸린 머리, 상수리나무 아래의 무덤 (10:8~12)

"9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10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대상 10:9~10)

10절의 "머리"는 히브리어로 흔히 쓰는 로쉬가 아니라 굴골레트입니다. 굴골레트는 구체적으로 '두개골'을 뜻합니다. '둥글다', '구르다'라는 뜻의 동사 갈랄에서 파생한 단어이며, 신약성경의 '골고다(해골의 곳)'의 어원이 되는 말입니다. 살과 피가 제거되고 뼈만 남은 부위를 신전에 전시하는 행위는, 적군의 수장을 제물로 바쳤음을 선언하는 종교적 승리의 의식이었습니다. 그날 세상이 본 것은 우상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참혹한 장면 뒤에 따뜻한 손 하나가 나옵니다.

"11 길르앗 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2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대상 10:11~12)

길르앗 야베스는 사울이 왕이 된 직후 암몬 왕 나하스에게서 건져 낸 바로 그 성읍입니다(삼상 11장). 이들의 행동은 사울에게 입은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칠 일 금식은 충성과 존경의 증언이었습니다.

모두가 성읍을 버리고 도망할 때(7절), 은혜를 기억한 사람들만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사울의 마지막은 비참했지만,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은 그가 베풀었던 은혜를 잊지 않았고 끝까지 책임을 다했습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

그리고 성도 여러분, 우상의 신전에 걸린 기름부음 받은 자의 몸 — 이 장면이 어디서 다시 일어납니까?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마 27:33)

굴골레트가 다시 나옵니다. 다곤의 신전에 걸린 사울의 두개골처럼, 참 기름부음 받으신 분도 해골의 곳에서 조롱거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사울의 패배가 우상의 승리처럼 보였듯, 십자가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구경거리가 된 것은 우상들이었습니다!

3. 세 가지 죄, 한 가지 방향 (10:13~14)

"13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대상 10:13~14)

이 두 절이 역대기 전체에서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31장에는 이 두 절이 없습니다. 이것은 역대상의 저자가 쓴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첫째,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 마알입니다.

이번 주에 이 단어를 벌써 세 번 만났습니다. 2장 7절의 아갈("멸망 받을 물건을 범함으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 5장 25절의 요단 동편 지파("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 9장 1절의 유다("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더니"). 그리고 오늘 10장 13절의 사울 — 이것이 네 번째입니다.

한 사람에서 시작해서(아갈), 두 지파 반으로 번지고(요단 동편), 온 나라로 퍼지고(유다), 이제 왕에게 이릅니다.

마알은 요구에 미달한 정도가 아니라 인격적 거부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순종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입니다.

"과거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는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번제를 드려 율법을 어겼습니다(삼상 13장). 이후에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아말렉 왕과 가축들을 살려 두며 다시금 하나님 말씀을 어겼습니다(삼상 15장)."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셋째,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입니다.

"신접한 자"가 히브리어 오브입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는 영매나 '죽은 자의 영' 자체를 가리키는 고대 근동의 종교적 어휘입니다. 율법은 이를 엄격히 금합니다.

"남자나 여자가 접신하거나 박수무당이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27)

그리고 이 세 가지가 한 문장으로 수렴합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 다라쉬입니다.

여기서 누구나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사울도 물었지 않습니까?"

사무엘상 28장 6절이 분명히 이렇게 적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물었는데 왜 묻지 않았다고 합니까.

첫째, 다라쉬는 "하나님을 뒤쫓아 수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향한 삶 전체의 방향 설정"입니다.

"하나님은 한마음으로 찾든지 아니면 전혀 찾지 않는 것이다… 사울의 혼합주의는 구약 이스라엘 불신실함의 축소판이다."

둘째, 다라쉬는 "질문하다"를 넘어 "믿음을 지키고 여호와께 진실하게 남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물었더라도 "찾은 것"은 아닙니다.

셋째, "하나님이 자기를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지 않으실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렇게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

성도 여러분, 문제는 응답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구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불신실함은 고립된 개별적인 행동 하나하나에서 드러난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태도 속에 뚜렷하게 나타났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대기 저자는 사울에게 전인격적인 믿음이 결핍된 상태였다고 바라본 것이다."

"사울이 자신을 불신실한 자로 드러낸 것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그의 행실 전체에서였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문장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이 문장의 주어는 적군인 블레셋이 아닙니다. 활 쏘는 자가 아닙니다. 스스로 칼에 넘어진 사울 자신도 아닙니다. 여호와이십니다. 역사의 주인은 블레셋이 아니라 야웨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문장의 뒷부분에 복음이 숨어 있습니다.

"사울은 버려졌으나 그의 왕국은 버려지지 않았다." 나라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셨다. 그의 손 안에서 위기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나라를 다윗에게 넘겨 주셨다."

"실패의 잿더미에서 하나님은 은혜로 새 지도자를 일으키시고, 그 주위에 새 백성을 모으신다."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다시 한 줄로 꿰어 봅시다.

열두 세대의 족보를 가진 왕이 있었습니다(9:35~44). 그가 한 절짜리 전투에서 무너졌습니다(10:1). 그의 온 집이 함께 죽었습니다(10:6). 그의 두개골이 우상의 신전에 걸렸습니다(10:10). 은혜를 기억한 사람들이 그를 장사했습니다(10:11~12).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이유를 세 줄로 적으셨습니다 — 범죄하였고,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다(10:13). 그러나 나라는 없어지지 않고 넘겨졌습니다(10:14).

묵상 에세이의 글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살펴보면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기보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요구할 때가 더 많다. 이미 내가 결정해 놓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는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음은 "무엇이 주의 뜻입니까"가 아니라 "제 뜻을 도와주십시오"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마음속에 없는 사람은 절망에서 벗어날 길도 없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붙들 것은 무엇입니까. - 오스왈드 체임버스

첫째, 실패의 크기는 그 사람의 재능이 아니라 방향으로 결정됩니다. 사울은 키가 크고, 용감했고, 이스라엘의 첫 왕이었습니다. 문제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둘째, 하나님은 한마음으로 찾는 자를 만나 주십니다. 응답이 없어서 못 찾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셋째, 사울은 버려졌으나 나라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죽었고 왕좌는 비었습니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히 11:4)."

그 빈자리에 누가 앉으셨습니까.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2~33)

"궁극적으로 이 언약을 양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이는 다윗이 아니라 예수님이다."

성도 여러분, 사울의 나라는 넘겨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나라도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나라는 누구에게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입니다. 사울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 내신 분이 누구신지, 오늘 아침 그 이름을 부르십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내일은 이 나라가 실제로 누구의 손을 통해 세워지는지 —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이는 자리를 보겠습니다.

오늘의 찬양

새 282장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 오늘의 찬송.

사울의 세 가지 기소(10:13) 앞에 선 우리를 위해 먼저 오신 분을 노래합니다. 예배 여는 찬송으로.

〈보혈을 지나〉 (경배와 찬양) — 다곤의 신전에 걸린 머리(10:10)가 골고다에서 뒤집힌 자리를 노래합니다.

새 449장 〈예수 따라가며〉 —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10장 13절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의 정확한 반대편입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사울은 여호와께도 물었고 신접한 자에게도 물었습니다(삼상 28:6; 대상 10:13).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께 묻는 것"과 나란히 놓여 있는 다른 밧줄은 무엇입니까?

오늘 그중 하나를 끊는다면 무엇을 끊겠습니까?

나의 기도는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도와주세요"입니까?

이미 결정해 놓고 승인을 요청하고 있는 일이 지금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모든 결정의 자리에서 먼저 하나님께 묻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예산과 사역과 사람을 정하는 자리마다 우리의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라는 문장이 우리 교회의 기록에는 없게 하소서.

사업과 가정과 건강의 길보아를 지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셨음을 보게 하시고, 실패의 잿더미에서 새 백성을 모으시는 은혜를 각 사람의 자리에서 경험하게 하소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처럼 우리도 넘어진 이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는 교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