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이 자랄 때까지
본문: 역대상 19장 1절 ~ 7절
여는 말
어제 주일 새벽, 우리는 진짜 왕 앞의 왕을 보았습니다. 하맛 왕 도우는 다윗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데, 아들을 보내 평안을 묻고 축복했습니다. 다윗은 그 예물까지 여호와께 구별해 드리고,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했습니다.
오늘은 방향이 거꾸로입니다. 이번에는 다윗이 먼저 사람을 보냅니다. 평안을 묻고 위로하러 갑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축복이 아니라 깎인 수염과 잘린 옷이었습니다.
같은 다윗입니다. 반응이 달랐습니다. 도우는 평안을 물었고, 하눈은 의심했습니다.
18장의 전쟁이 다윗이 사방으로 나아가 싸운 기록이라면, 19장은 다윗이 이웃 나라의 도발을 막아 낸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칼이 아니라 조문 사절이었습니다. 전쟁의 원인이 다윗에게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삶이 오늘 본문에 붙인 제목이 이것입니다. 「화해가 아닌 전쟁을 선택하는 어리석음」.
오늘 일곱 절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의심, 사람의 계산만 나옵니다. 그래서 더 잘 보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1. 은혜를 기억하는 왕 (19:1~2)
"1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 다윗이 이르되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전에 내게 호의를 베풀었으니 이제 내가 그의 아들 하눈에게 호의를 베풀리라 하고 사절들을 보내서 그의 아버지 죽음을 문상하게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러 하눈에게 나아가 문상하매" (대상 19:1~2)
"그의 아들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담담한 한 줄입니다. 그러나 이 한 줄이 이야기의 무대를 세웁니다. 세대가 바뀌면 앞 세대가 맺은 관계도 시험대에 오릅니다.
나하스가 언제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는지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 사울과 원수였던 나하스가 다윗을 도왔으리라 짐작할 뿐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처음 싸운 상대가 바로 암몬 사람 나하스였습니다. 사울의 원수가 다윗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호의"가 헤세드입니다. 2절에 두 번 나옵니다. 나하스가 베푼 헤세드, 그리고 다윗이 갚으려는 헤세드.
"문상하게"는 레나하모, '그를 위로하려고'입니다. 슬픔을 함께 짊어지고 마음을 녹여 주는 위로입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이, 잊어도 그만인 옛 은혜를 잊지 않고 갚으려 합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는 것은 신의 있는 태도입니다."
다윗은 우는 자와 함께 울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반응하는 선택을 합니다.
2. 의심이 벗긴 수염 (19:3~5)
"3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 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4 하눈이 이에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을 깎고 그 의복을 볼기 중간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가서 그 사람들이 당한 일을 말하니라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대상 19:3~5)
위로하러 온 사람들이 첩자가 되었습니다. 방백들의 말에는 동사가 세 개 쌓입니다. 엿보고, 정탐하고, 전복시키고. 위로자의 발걸음을 정탐병의 발걸음으로 뒤집어 읽은 것입니다. 사무엘하는 "이 성"이라고 하는데 역대기는 "이 땅"이라고 합니다. 의심이 그만큼 커졌습니다.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방의 나라를 차례로 꺾은 왕이었습니다. 왕이 바뀌는 불안한 때에 그런 왕의 사절이 오면 경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뜻은 분명합니다. 다윗은 선했고, 암몬은 그 선의를 읽지 못했습니다.
젊은 왕 하눈 곁에는 지혜로운 조언자가 없었습니다. 훗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직후, 경험 없는 젊은 왕이 신하들의 잘못된 말을 듣고 나라를 무너뜨렸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가 왕의 운명을 가릅니다. 우리 곁에도 방백들이 있습니다. "다 속셈이 있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위로하러 온 사람이 첩자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대개 큰 사건이 아니라 이 작은 의심 한마디입니다.
하눈은 사절들의 수염을 깎았습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수염'이라는 말도 없이 그저 "그들을 밀어 버렸다"고 적습니다. 무엇을 밀었는지보다 모욕 그 자체에 눈을 두게 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수염은 명예와 위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수염을 깎이는 것은 가장 큰 수치였습니다. 거기에 옷을 볼기 중간까지 잘랐습니다. 포로가 당하는 치욕입니다. 그리고 사절은 왕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사절의 수염을 깎은 것은 다윗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과 같습니다.
"불신은 주님의 선하심을 오해하게 만듭니다."
하눈은 다윗의 선의를 믿지 못했습니다. 불신이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이 적대로 이어졌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만나를 먹고 반석의 물을 마시면서도 이렇게 원망했습니다.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신 1:27)
모세는 그 원망의 뿌리를 한 줄로 짚었습니다.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신 1:32)
불신에 사로잡힌 마음은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합니다. 사랑의 손길을 두려움으로 읽습니다. 의심은 위로를 정탐으로 읽습니다.
이제 5절입니다. 모욕을 당한 다윗의 첫 반응은 군대 소집이 아니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신하들을 맞으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수염이 자라기까지"는 초목이 돋아나듯 수염이 다시 돋을 때까지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국경의 성 여리고에 머물게 했습니다. 수염이 자라 위엄을 되찾을 때까지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다윗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큰 모욕 앞에서도 복수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시작한 쪽은 다윗이 아니라 암몬입니다. 그는 복수 대신 부끄러움을 가려주었습니다.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 50:6)
다윗의 사절은 수염을 깎였습니다. 다윗의 자손은 수염을 뽑히셨습니다.
다윗의 사절은 하눈의 궁에서 거절당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은 자기 땅에서 거절당하셨습니다.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11)
다윗은 수치당한 신하를 여리고에서 가려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지셨습니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3. 스스로 악취가 되고도 (19:6~7)
"6 암몬 자손이 자기가 다윗에게 밉게 한 줄 안지라 하눈과 암몬 자손은 더불어 은 천 달란트를 아람 나하라임과 아람 마아가와 소바에 보내 병거와 마병을 삯 내되 7 곧 병거 삼만 이천 대와 마아가 왕과 그의 군대를 고용하였더니 그들이 와서 메드바 앞에 진 치매 암몬 자손이 그 모든 성읍으로부터 모여 와서 싸우려 한지라" (대상 19:6~7)
"밉게 한 줄"이 히트바이슈입니다. '악취를 풍기다'라는 말입니다. 나일강 물고기가 죽어 물에서 악취가 날 때 쓰인 단어입니다. 그것도 스스로에게 돌아오는 형태입니다. 직역하면 "그들이 스스로 악취가 되었다"입니다. 우연히 미움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관계를 썩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고용하였더니"는 값을 치르고 남의 힘을 사들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위기를 은을 뿌려 산 용병과 병거로 막아 보려 한 것입니다. 은 천 달란트는 수십 톤의 은입니다. 성막을 짓는 데 쓴 은의 열 배입니다.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허세였습니다. 혼자서는 싸울 수 없었기에 남의 군대를 산 것입니다.
그저께 우리는 말의 힘줄을 끊은 왕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병거를 버렸고, 하눈은 병거를 샀습니다.
"7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시 20:7)
하맛 왕은 싸우지 않고도 다윗에게 나아와 평안을 빌었습니다. 암몬은 셀 수 없는 병거를 사고도 패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힘을 사고파는 셈법으로는 끝내 붙들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들이 곧바로 사과하고 화해를 청했다면,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잘못을 덮으려다 더 큰 악을 선택하는 모습입니다."
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 28:13)
하눈이 보내야 했던 것은 은 천 달란트가 아니라 화친을 청하는 사신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려면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고백이 필요합니다."
"미안합니다" 한마디가 은 천 달란트보다 쌉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천 달란트를 씁니다. 잘못을 알았을 때가 돌아설 때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여기서 한 번 더 뒤집힙니다.
잘못한 것은 우리인데, 화친의 사신을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0)
다윗의 사절은 수염이 깎인 채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오늘도 "화목하라" 하고 사신을 보내십니다. 그 인자하심을 의심하고 거절하는 것이 하눈의 길입니다.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롬 2:4)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형제와도 화목합니다. 그 일은 예배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맺는 말
본문을 다시 꿰어 봅시다. 다윗은 은혜를 기억해 위로자를 보냈고, 하눈은 의심으로 그 위로자의 수염을 깎았고, 암몬은 스스로 악취가 된 줄 알면서도 화해 대신 병거를 샀습니다.
기억하는 헤세드, 의심이 벗긴 수염, 그리고 화해 대신 산 전쟁입니다.
불신에 사로잡히면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보지 못합니다. 말씀 위에 서면 주님의 선하심을 알게 됩니다.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조지 뮬러는 39년을 함께 산 아내를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에서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하는 시편 말씀으로 설교했습니다. 아내가 아플 때 그는 "삶이든 죽음이든 아내와 제게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실 줄 믿습니다" 하고 기도했고, 아내를 보낸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 만족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마음이 아플 때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받은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잊어도 그만인 옛 호의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받은 십자가의 은혜이겠습니까.
둘째, 선의를 선하게 읽으십시오. 의심은 위로를 정탐으로 읽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수치당한 사람에게는 수염이 자랄 시간을 주십시오.
셋째, 잘못을 알았을 때 병거를 사지 말고 사신을 보내십시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화목의 사신을 보내셨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오해와 모욕을 당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하십시오.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9~21)
오늘의 찬송이 새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여 화평하게 하시고 망령되고 악한 일을 물리치게 하소서."
하눈의 궁에서 무너진 화평이 오늘 우리 안에서, 우리 가정과 교회에서 세워지기를 기도하며 부릅시다.
오늘의 찬양
새 424장 〈아버지여 나의 맘을〉 — 오늘의 찬송.
"완악하고 교만한 것 변케 하여 주소서."
3절 방백들의 교만한 의심과 6절 화해 대신 전쟁을 고른 완고함을 거슬러, 화평의 마음을 구합니다.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2절의 "호의"(헤세드)에서 하나님의 끝없는 인자로 잇습니다. 다윗의 헤세드는 거절당했지만, 하나님의 인자는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결단의 자리에서.
새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5절, 모욕을 갚기 전에 수치당한 신하를 먼저 품은 다윗의 마음, 그리고 수염을 뽑히고도 얼굴을 가리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을 본받기를 구합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다윗은 오래전 받은 호의를 잊지 않고 그 아들에게 위로를 보냈습니다.
내가 잊고 지낸 '받은 은혜'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번 주 그에게 어떤 위로와 감사를 보내겠습니까?
암몬은 자기가 "밉게 한 줄" 알면서도 사과 대신 병거를 샀습니다.
내가 잘못을 알면서도 자존심과 변명으로 버티고 있는 관계는 무엇입니까?
오늘 먼저 보낼 "화친의 사신"은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호의가 오해로 돌아올 때에도 복수를 구하지 않고,
수치당한 지체에게 "수염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서로를 품게 하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과 사랑으로 대하셨듯, 오늘 마주하는 이에게 선을 베풀게 하소서.
의심과 실수로 갈등이 번져 갈 때 아집을 내려놓고 겸손히 용서를 구하게 하시고,
관계가 깨어진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 화목의 복음이 흐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