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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11장 10-19절

2026.09.18큐티와 묵상

부어 버린 물

본문: 역대상 11장 10절 ~ 19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헤브론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서 끝났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모여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하고,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맺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 왕이 여부스로 올라가 시온 산성을 취했고, 무너진 성이 되살아났습니다. 그 아홉 절의 끝이 이것이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11:9).

오늘 본문은 그 "점점 강성하여"의 안쪽을 열어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왕 곁에는 누가 서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의 이 명단은 원래 사무엘하 23장에 있던 것입니다. 사무엘하에서는 다윗 이야기의 맨 끝에 부록처럼 붙어 있습니다. 역대기는 그것을 즉위 직후로 앞당겼습니다. 사무엘하에서는 "왕이 이런 사람들도 데리고 있었다"는 뒷이야기인데, 역대기에서는 "이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왕이 섰다"는 본이야기가 됩니다.

어제가 "백성의 왕"이었다면 오늘은 "왕의 백성"입니다.

오늘 우리는 한 줄짜리 표제에서 시작해서, 왕이 마시지 않고 땅에 부어 버린 물 한 그릇에서 끝나겠습니다.

1. 힘껏 도와 — 명단을 읽는 열쇠 (11:10)

"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대상 11:10)

11~12장의 모든 등장인물은 다윗 왕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만장일치의 증인들이다. 오십 개가 넘는 사람들 모두 전부 증인석에 앉은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힘껏 도와". 어떤 강요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분발하거나 무리가 단단히 결속하여 세력을 귀합하고 지탱하는 지속적인 연대의 동작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전역에서 모여든 용사들이 스스로 결단하여 다윗을 향해 전 존재를 던져 다윗의 왕권을 떠받쳐 주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결단해서'입니다.**

어제 :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10:14)

오늘 : "이 사람들이 …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11:10)

누가 세웠습니까? 하나님입니까, 사람입니까. 둘 다입니다. 이 표제는 1~3절의 세 주제(다윗의 왕권, 온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넷째 주제 "힘써 도움"을 더합니다. 왕권은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 왕권은 사람들의 손을 통해 세워집니다. 10장 14절의 하나님의 "돌리심"과 11장 10절의 사람들의 "떠받침"은 같은 사건의 두 면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헌신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사무엘하 23장 8절의 "용사들의 이름"을 역대기는 "용사의 수효"(11절)로 바꾸었습니다. 이름 하나하나가 아니라 "이만큼이 그를 받쳤다"는 것입니다.

"개인들이 아니라 오십이 넘는 이름들의 누적 효과가,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다윗 왕의 등극에 대한 이스라엘의 온전한 참여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표제도 결국 말씀으로 닫힙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어제 11장 3절에서 들은 그 문장이 다시 나옵니다. 사람들의 헌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용사들의 활약이 개인에 대한 충성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헌신이었음을 강조한다."

2. 모두가 물러난 밭 한가운데 — 그러나 구원은 여호와께 (11:11~14) 

[대상11:13-14]

"13 그가 바스담밈에서 다윗과 함께 있었더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와서 치니 거기에 보리가 많이 난 밭이 있더라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되 14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그 밭을 보호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이제 엘르아살의 밭으로 가 봅시다.

"백성들이 도망하되." 그리고 "그가 그 밭 가운데에 서서."

모든 사람이 뒤로 갈 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성채가 아니라 보리밭입니다. 아무도 목숨 걸 만한 곳이 아니라고 여겼던 곳입니다.

14절 전반부에는 세 개의 동사가 연속됩니다. 굳게 서서, 건져 내어, 쳤다. 물러서지 않고 방어선과 공격선을 동시에 구축하는 맹렬한 동작입니다. 버티고, 건져 내고, 쳤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전쟁의 결과를 확정 짓는 것은 이스라엘의 용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용사들의 충성스러운 분투가 배제되지 않으면서도, 구원을 철저하게 신적 개입으로 귀속시키는 구약 역사 서술의 균형 감각을 보여 준다."

엘르아살이 밭에 섰고, 구원은 여호와께서 하셨습니다.

"포로 후기 유다를 위한 역대기 기자의 소망 신학은 '용사들'의 공적이 아니라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에 기초한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시 24:8)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주변 사람들이 포기하고 떠날 때, 함께 물러서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교회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맡지 못하거나 함께 섬기던 사람들이 떠나면, 나까지 계속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엘르아살은 모두가 물러난 자리에서 다윗과 함께 싸웠습니다. 그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보리밭은 어디입니까?

 그렇습니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기게 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3. 마시지 아니하고,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11:15~19)

"15 삼십 우두머리 중 세 사람이 바위로 내려가서 아둘람 굴 다윗에게 이를 때에 블레셋 군대가 르바임 골짜기에 진 쳤더라 16 그때에 다윗은 산성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은 베들레헴에 있는지라 17 다윗이 갈망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꺼 하매" (대상 11:15~17)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고향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주둔해 있습니다. 고향이 점령당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굴에 있습니다.

17절의 "갈망하여"는 강하게 샘구쳐 오르는 갈증과 지독한 향수가 복합된 상태를 말합니다. 다윗의 내면이 극한으로 취약한 상태였음을 암시합니다. 왕이 향수병에 걸린 것입니다. 대단한 전략도 아니고 거룩한 서원도 아닙니다. 어린 시절 마시던 그 물 한 모금이 마시고 싶다는 혼자말이었습니다.

  "18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대상 11:18)

 "그들은 적진을 돌파하고 갔다가 돌아오는 터무니없고 장엄한 생각을 품었다. 단지 그가 어린 시절 알던 우물의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터무니없고 장엄한 생각!

이 한 절에 두 개의 결정적인 동사가 있습니다.

첫째, "돌파하고"입니다. 나무토막이 둘로 쪼개지거나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강한 힘으로 무엇을 둘로 파열시키는 것입니다. 홍해가 좌우로 갈라지는 이적과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는 사건에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 14:21)

홍해를 가르던 그 단어가 여기서는 세 사람의 걸음에 쓰였습니다. 세 용사는 블레셋 진영을 둘로 쪼개어 한가운데를 정면으로 돌파해 지나갔습니다.

둘째, "부어 드리고"입니다. 동사 나사크. 여기가 오늘 아침의 심장입니다.

나사크는 포도주, 물, 기름 등의 액체를 쏟아붓는 것을 뜻하는데, 제사에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제물로 바친 짐승 곁에 포도주를 부어 드림으로써, 제사장이 자신의 생명과 기쁨을 온전히 하나님께 쏟아붓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부하들의 생명을 담보로 획득한 물을 거룩한 봉헌물로 다시 드립니다. 다윗의 진영이 순간적으로 거룩한 제단이 된 것입니다.

아둘람 굴이 제단이 되었습니다!

18절은 "여호와 앞에"가 아니라 "여호와께 부어 드림"으로 읽어야 합니다(삼상 7:6). 예배를 드립니다!

"19 이르되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그들이 자기 생명도 돌보지 아니하고 이것을 가져왔으므로 그것을 마시기를 원하지 아니하니라 세 용사가 이런 일을 행하였더라" (대상 11:19)

'피'가 문장 처음에 나옵니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는 직역하면 '그들의 생명(네페쉬)의 대가로'입니다. 이 말이 두 번 반복되면서 그 물이 용사들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고 맞바꾼 희생적 산물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피와 생명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레위기의 명제에 기반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피는 생명이므로, 목숨 걸고 가져온 물을 마시는 것은 그들의 피를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땅에 쏟아지는 희생 제물의 생명의 피처럼, 다윗은 그 물을 거부한다. 부하들이 자기를 위해 그것을 얻으려 목숨을 걸었으므로 그 물은 피만큼 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윗이 한 일을 정확히 봅시다. 그는 그 물을 자기 갈증에 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권력이 백성의 생명을 사적으로 취할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밝히면서, 부하들의 충성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헌신으로 돌리는 공의로운 통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충성은 위로 흐르고, 지도자는 그 충성을 다시 하나님께 돌립니다.

한 절 묵상의 글입니다. "세 용사가 길어 온 물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그들의 '생명 값'과도 같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 물을 소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부어 드렸습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열매를 자신의 공로로 취해서는 안 됩니다. 지극한 헌신을 받기에 합당한 이는 하나님뿐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세 사람이 뚫고 간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그 베들레헴에서 한 왕이 나셨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의 피를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은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다윗은 부하의 피를 마실 수 없어서 땅에 부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기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시며 "마시라" 하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2)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윗의 그 동작을 자기 인생에 그대로 가져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뱌 2:17)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때후 4:6)

다윗이 베들레헴 물을 부어 드린 그 전제의 그림입니다.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열 절을 다시 꿰어 봅시다.

사람들이 스스로 결단하여 왕을 떠받쳤고(10절), 한 사람이 창을 들어 홀로 섰고(11절), 모든 것이 도망한 밭 가운데 한 사람이 남았고(13~14절), 그러나 구원은 여호와께서 하셨고(14절), 세 사람이 적진을 갈라 물을 길어 왔고(18절), 왕이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18~19절).

어제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가 오늘 이렇게 사람의 몸으로 나타났습니다.

묵상 에세이가 헌신의 두 가지 태도를 구별해 줍니다.

첫 번째 태도는 내 것을 전부 포기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분명 아름답고 귀한 태도입니다. "하지만 '내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인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반복되는 희생의 도전 앞에서 지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생색내거나 자기 의를 앞세우게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더 높은 차원의 태도입니다. "복음을 위해 내가 포기하는 모든 것이 본래 '하나님 것'임을 매 순간 의식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잠시 맡기셨던 그분의 소유를 다시 취하시는 것이라는 이해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확신과 든든함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려놓음의 원동력'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 두 번째 태도였습니다. 그 물은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된 리더는 추종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이들을 묵묵히 돌보며 사랑할 뿐이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헌신은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미트하즈킴, 자기 온 존재를 던져 단단히 결속하는 것입니다.

둘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싸우는 것입니다. 엘르아살이 지킨 것은 성채가 아니라 보리밭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물러난 곳에 남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무공입니다.

셋째, 받은 헌신은 하나님께 부어 드려야 합니다. 사람의 피를 자기 잔에 담지 않는 것, 그것이 왕의 품격이고 우리 모두의 품격입니다.

오늘의 찬송이 새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입니다.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 세 용사가 왕에게 드린 것을 왕이 하나님께 부어 드린 그 자리에서 우리도 함께 부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롤 12:1)

내일은 이 명단의 나머지 — 삼인에도 들지 못하고 이름 한 줄만 남은 사람들(11:20~47)을 보겠습니다. 그늘에 가린 사람들, 이름만 남은 사람들, 그리고 명단 끝에 적힌 이방인들입니다.

오늘의 찬양

새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세상 살아갈 동안 찬송하게 하소서"

— 11장 19절, 생명의 대가로 얻은 물을 부어 드리는 자리의 노래입니다.

〈온 맘 다해 주 사랑하라〉 (경배와 찬양) — "온 맘 다해 주 사랑하라 생명 다해 주 사랑하라"

— 11장 10절 미트하즈킴, 전 존재를 던진 연대를 그대로 노래합니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모든 것이 도망할 때 엘르아살은 보리밭 한가운데 섰습니다(11:13~14). 지금 내가 지키고 있는 "보리밭"은 무엇입니까?

함께하던 사람들이 떠나서 그만두고 싶은 자리가 있다면, 오늘 그 자리에 다시 서기 위해 필요한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부하들의 목숨으로 얻은 물을 자기 갈증에 쓰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11:18~19).

최근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로 내가 얻은 열매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내 공로의 잔에 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의 모든 섬김이 떠밀린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 결단한 헌신이 되게 하소서. 눈에 띄지 않는 자리, 결과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는 성도들에게 "여호와께서 큰 구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는 고백을 허락하소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성도들의 헌신을 자기 잔에 담지 않게 하시고, 받은 모든 충성을 하나님께 부어 드리는 손이 되게 하소서. 우리 공동체가 서로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귀하게 여기며,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는 교회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