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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11장 1-9절

2026.09.17큐티와 묵상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본문: 역대상 11장 1절 ~ 9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한 문장 앞에서 멈췄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10:14).

사울은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 나라를 "돌리셨습니다"(사바브). 오늘 본문은 그 넘겨진 나라가 실제로 사람들의 손을 통해 어떻게 세워지는가를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을 사무엘하 5장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없어진 것이 너무 많습니다.

사무엘상 16장의 베들레헴 기름부음이 없습니다. 골리앗이 없습니다. 사울의 창을 피해 도망다니던 세월도 없습니다. 사무엘하 1장의 애가도 없고, 아브넬과 이스보셋과의 내전(삼하 2~4장)도 없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 사무엘하 5장 4~5절의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를 칠 년 육 개월 다스렸고"가 통째로 빠졌습니다.

칠 년 반이 사라졌습니다.

역대기에서 다윗의 이야기는 도피도 내전도 없이 곧바로 온 이스라엘의 즉위로 시작합니다.

바벨론 포로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고 하나되도록 하기 위하여 생략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저자가 우리에게 보게 하려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말씀과 사건의 일치입니다.

1.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11:1~3)

"1 온 이스라엘이 헤브론에 모여 다윗을 보고 이르되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대상 11:1~2)

첫 동사는 "모여"입니다. 히브리어로 카바츠입니다. 역대기에서 중요한 사건이 개시될 때에 종종 쓰이는 단어입니다. 어제는 사람들이 흩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10:7). 오늘은 모이는 장면입니다. 도망친 백성이 한 사람 앞에 모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직역하면 "당신의 뼈와 당신의 살"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신체관에서 뼈와 살의 결합은 온전한 하나의 생명체와 물리적 실존 전체를 대변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 구문은 혈연적 동질성과 언약적 결속을 선언하는 법적, 관계적 언어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향해 자신의 뼈와 살이라고 표현한 것이 최초의 용례입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 2:23)

이것은 정치적, 군사적 언어가 아닙니다. 혼인의 언어입니다.

첫째, 하나됨을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통치자이지만 그의 인간적 기원은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

둘째, 업적을 존중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셋째, 언약을 수용했습니다. 다윗이 조건을 제시하고 그들은 기름부음으로 수락합니다.

넷째, 위임을 인정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그리고 2절에 이 왕을 부르는 두 이름이 나옵니다.

첫째, 목자입니다. 이 단어는 가축 떼를 풀밭으로 인도하여 먹이고 돌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인 양 떼를 위탁받아 돌보는 대리적 사명자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부각됩니다.

양이 왕의 것이 아닙니다. "내 백성"입니다. 목자는 고용인이므로 다윗은 그 양 떼에 대해 여호와께 책임을 집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본문이 "내 백성"을 한 번 더 넣은 것입니다.

둘째, 주권자입니다. 히브리어 나기드입니다. '앞에 두다', '선포하다', '명백히 하다'라는 뜻의 동사 나가드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무리 가운데 가장 앞장서도록 배치된 사람, 혹은 앞에 서서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나 사령관을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멜레크)으로 옹립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그를 언약 공동체를 이끌 통치자(나기드)로 임명하셨다는 사실이 우선됨을 밝힌다. 다윗 왕권의 기원을 대중의 지지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명에 두는 수사적 장치다."

백성이 뽑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3절입니다.

"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있는 왕에게로 나아가니 헤브론에서 다윗이 그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 (대상 11:3)

성도 여러분, 이 마지막 구절은 사무엘하 5장에 없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직접 붙였습니다.

다윗에게 기름 부은 행위가 이미 과거에 사무엘이라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여호와의 말씀에 철저히 따라 이루어진 일임을 명시합니다. 문장의 전반부는 주어가 이스라엘이지만, 후반부는 궁극적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가 어제와 오늘이 갈라지는 자리입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10:13). 다윗은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전하신 말씀대로" 세워집니다(11:3).

헤브론이 어디입니까.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묻힌 막벨라 굴이 있는 곳입니다(창 23장; 49:31). 다윗을 조상들의 장소와 결부시킴으로써 역대기 기자는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을 신학적으로 이어 붙입니다.

무덤의 도시에서 왕조가 시작됩니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시 78:70~72)

이 목자는 다윗이지만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겔 34:23)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다윗은 양 떼에 대해 여호와께 책임지는 고용된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참 목자는 그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왕의 가까운 혈족이니이다" — 이 고백이 어디서 성취됩니까.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1, 14, 17)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엡 5:30)

백성이 왕에게 "당신은 우리의 뼈와 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왕은 우리의 뼈와 살을 실제로 취하셨습니다! 성육신이 즉위의 근거입니다.

2. 여부스가 다윗성이 되다 — 왕은 혼자 짓지 않는다 (11:4~8)

"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땅의 주민들이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5 여부스 원주민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성이더라" (대상 11:4~5)

사무엘하 5장에서는 예루살렘 정복이 즉위 후 일어난 여러 사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역대기는 이것을 즉위 의식의 일부처럼 곧바로 붙여 놓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자 자신도 3장 4절에서 헤브론 칠 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요.

"그는 예루살렘 정복을 다윗 왕의 첫째이자 최고의 행위로, 그의 즉위와 분명한 연속선상에 제시하고자 했다. 다윗과 예루살렘의 결속은… 이렇게 떼어 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다윗은 왕이 된 뒤 첫 일로 성전이 세워질 도시를 취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첫 걸음은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를 향합니다. 왕이 된 첫날에 무엇을 하느냐 —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여기에 네 도성이 등장합니다.

- 예루살렘 — 영원한 도성(계 21:2). 그 전신 살렘은 "영원한 제사장" 멜기세덱의 집이었습니다(창 14:18; 히 7:3).

- 여부스 — 역사적 도성. 현대 예루살렘의 거리 밑 어딘가의 잔해층처럼, 모든 성경의 확실한 기초입니다.

- 시온 — 영적 의미가 시야에 있을 때 쓰는 이름입니다(시 2편; 48편; 87편; 125편).

- 다윗성 — 점령할 만큼 강했고, 지킬 만큼 강했습니다. 왕, 왕좌, 산성.

"이렇게 새 왕국의 심장에는 영원하면서도 역사적인 도성, 영적 진리의 보고이자 강한 통치의 자리인 도성이 있다." (윌콕)

"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7 다윗이 그 산성에 살았으므로 무리가 다윗성이라 불렀으며 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성의 나머지는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대상 11:6~8)

요압이 나옵니다. "먼저 치는 자는 우두머리(로쉬)가 되리라" — 그리고 요압이 로쉬가 되었습니다. 어제 우리는 다곤 신전에 걸린 머리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성벽을 먼저 오른 사람이 머리가 됩니다.

역대기가 왕의 신하가 왕과 협력하는 모습을 즐겨 그립니다.

그리고 8절의 동사가 놀랍습니다. "중수하였더라"가 히브리어 예하예입니다. '살다', '생존하다'라는 뜻의 동사 하야의 피엘 미완료형으로, '살려 내다'라는 뜻이고, 원래의 생명력 있는 상태로 소생시킨다는 치유와 복원의 뉘앙스를 지닙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관찰이 이것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건축에 사용되는 동사 바나(짓다)나 하자크를 배제하고, 생명체의 부활을 의미하는 하야를 의도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요압이 시온 산성의 파편들을 모아 '소생시켰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도 건설이 죽은 공간에 생명을 이식하는 구속사적 소생(resurrection) 사건임을 강조합니다.

성도 여러분, 성을 빼앗은 것도 요압이고 무너진 성을 되살린 것도 요압입니다. 왕의 이름이 붙은 도성을 실제로 지은 손은 왕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다윗 혼자서 이 일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요압이 헌신적으로 섬겼고, 온 이스라엘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 20:2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3.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11:9)

"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대상 11:9)

어제: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10:13~14).

오늘: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11:9).

"사울의 불충(대상 10:13)과 대조적으로,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권력 기반을 넓힌다(11:9)."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한 번에 강해진 것이 아니라 계속 강해져 가는 상승 곡선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 그것은 여호와의 영원한 임재로 인한 것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다윗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임재입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원인입니다.

역대기는 "만군의(체바오트)"라는 칭호를 자기 글에서는 결코 쓰지 않고, 자료에서도 대부분 지웁니다. 그런데 이 절은 그 칭호를 보존한 세 곳 중 하나입니다. 지우고 지우다가 여기서는 남겨 두었습니다. 전쟁에서 왕이 죽고, 시체가 우상의 신전에 걸리고, 백성이 성읍을 버리고 도망하던 그 이야기 바로 다음에 — "만군의 여호와"라는 이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성공은 전적으로 여호와께 귀속된다 — 하나님은 부르신 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다.

오늘 생명의 삶 한 절 묵상이 이 절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강함과 형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이 강성해질 수 있었던 비결은 그 자신의 리더십이나 용맹함에 있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라고 밝힙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스스로 강해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강함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대하 14:11)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아홉 절을 다시 한 줄로 꿰어 봅시다.

도망했던 백성이 모였고(1절), 왕을 자기 뼈와 살이라 불렀고(1절), 하나님이 그를 목자와 주권자로 부르신 것을 인정했고(2절),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맺고 기름을 부었고(3절), 말씀대로 되었고(3절),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여부스로 올라갔고(4절), 한 사람이 먼저 올라가 우두머리가 되었고(6절), 무너진 성이 되살아났고(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므로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9절).

사울은 범죄하였고, 다윗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사울은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였고, 다윗은 "말씀대로" 세워졌습니다.

사울은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고, 다윗에게는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사울의 나라는 넘겨졌고, 다윗의 나라는 점점 강성하여 갔습니다.

오늘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에 리더십 강의로 유명한 크리스 와이드너의 말을 인용합니다.

"영향력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나를 심는 것." 그리고 도덕성, 긍정적 태도, 이타심, 탁월함을 영향력의 황금법칙 네 가지로 꼽습니다. 영향력 있는 리더들의 중요한 공통점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에 앞서 자신이 먼저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사울을 통한 하나님의 연단 과정 속에서 다윗은 점점 이타심과 탁월함을 갖춘 성숙한 리더로 다듬어졌다."

성도 여러분, 역대기가 지워 버린 그 칠 년 반이 바로 그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구간이 있습니다. 아무 진전 없어 보이는 대기의 시간. 그런데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그 시간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실 말씀의 배경으로 들어갑니다.

"부, 안락, 명성과 같은 세상적인 것들은 당장 없다 해도 상관없지만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없으면 살 수 없다." - 제임스 패커

그리고 오늘 생명의 삶 플러스 예화 클립이 아주 선명한 그림 하나를 줍니다. 21세기 초 최강의 프로 축구팀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였습니다. 발롱도르 수상자가 네 명이나 있었습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잉글랜드의 오언, 프랑스의 지단, 포르투갈의 피구까지. 정말 최고의 스타가 즐비한 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팀이 2004년에서 2005년 사이에는 우승을 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2004년 유로 대회 우승국은 그리스였습니다. 그리스 축구팀에는 유명한 스타플레이어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무명의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 국가대표 팀은 최고의 팀워크를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만 찾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함께하는 공동체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나 영웅이 아니라, 하나의 드림 팀을 찾으십니다."

왕은 한 사람이지만 성을 오른 사람도 있고 성을 되살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말은 이것입니다.

첫째,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확인하는 것은 백성입니다. 교회의 모든 자리에는 이 세 겹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백성이 확인하고, 언약으로 묶는 것.

둘째, 왕은 혼자 짓지 않습니다. 성을 먼저 오른 요압의 이름이 왜 여기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의 무너진 자리를 조용히 "소생시키는" 손들을 보십시오.

셋째, 강성함의 원인은 재능이 아니라 임재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이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그 무용담을 한 줄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쓴 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한 줄이었습니다.

내일은 그 왕 곁에 서 있던 사람들 —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한" 용사들을 보겠습니다.

오늘의 찬양

새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 11장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를 그대로 노래합니다.

새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 — 여부스가 다윗성이 되었듯 우리 자리가 왕의 자리가 되기를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역대기는 다윗의 칠 년 반을 통째로 지웠습니다. 지금 내 인생에서 "아무 진전이 없어 보이는 대기의 시간"은 무엇입니까? 그 시간이 지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실 말씀의 배경이라면, 오늘 나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다르게 하겠습니까?

다윗성을 실제로 쌓고 되살린 손은 요압의 손이었습니다(11:6, 8). 지금 우리 교회에서,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이름 없이 "소생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오늘 그 사람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가 사람의 인정과 세상의 평판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를 먼저 묻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우리가 세우는 모든 자리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공동체의 확인과 언약의 책임이 함께 있게 하소서.

우리 교회의 강성함이 사람의 수나 재정이나 전략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에서 나오게 하소서. 무너져 있는 자리마다 요압처럼 조용히 다시 세우는 손들을 일으키시고,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함께 세우는 드림 팀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닮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