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민 손, 들린 손
본문: 시편 119편 33절 ~ 48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진토에 붙었던 나그네가 계명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달리기는 32절에서 조건 하나를 달고 끝났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오늘 열여섯 절은 그 조건을 붙들고 시작합니다. 헤 연(33~40)과 바브 연(41~48)입니다.
두 연은 손의 이야기입니다. 앞의 여덟 절에서 이 사람은 손을 아홉 번 내밉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그 손이 들립니다.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48절). 빈손으로 시작해서, 왕들 앞에 서고, 사랑으로 들린 손이 되기까지. 오늘 그 길을 걷습니다.
1. 여덟 절에 아홉 번 내민 손 (33~35절)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119:33~35)
여덟 절 안에 아홉 개의 간구가 들어 있습니다. 앨런은 여기에 재미있는 관찰을 보탭니다. 히브리어에서 '~하게 하소서'라는 사역형(히필)이 바로 이 연의 자모인 헤(ה)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자모와 내용이 맞아떨어져 여덟 줄 내내 "주여, 하소서"만 외치는 연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삶 본문 해설은 이것을 「세 가지 기도」로 정리했습니다.
가르치소서(33절)·깨닫게 하소서(34절)·행하게 하소서(35절).
매튜 헨리는 여기에 순서를 봅니다. 33~34절은 총명을 구하고, 35~36절은 의지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못박습니다. "총명이 성화되지 않았다면 아예 총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도 여러분, 이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176절을 말씀으로 채울 만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이 "가르치소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는 것과 지키는 것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3).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각오는 닭이 울기 전에 무너졌습니다. 결단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결단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참고로 33절 "끝까지"는 번역 난제입니다. 히브리어 '에케브'는 '끝까지'로도 '상급으로'로도 읽혀, 앨런과 밴게메렌은 후자를 택하고 키드너는 열린 문제로 남겨 둡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이 사람은 잠깐 지키다 말 생각이 없습니다.
2. 마음이 기울고, 눈이 끌린다 (36~40절)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36~37)
이제 위협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어제 본문에서 위협은 바깥에 있었습니다 — 고관들의 비방, 진토 같은 형편. 그런데 오늘은 안입니다. "마음의 충성이 마음의 불충성에게 위협받는다." 탐욕과 허탄한 것, 마음과 눈, 두 개의 문입니다.
36절의 전제를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은 중립에 서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어디론가 기울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마음을 지켜 주소서"가 아니라 "향하게 하소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긍정적 영향을 주셔서 순종을 북돋우신다는 것입니다(왕상 8:58; 대상 29:18).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자기 안에 뿌리내리기를 원하는 자는 세상을 향한 사랑을 자기 안에서 뿌리 뽑아야 한다." 주님도 같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37절 '허탄한 것'은 히브리어 '샤베'로, 실체가 없으면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우상을 말합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이 세상의 광채를 흐리게 하심으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눈에서 세상을 치우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반짝임을 흐리게 하십니다.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과 신실이 허영의 시장에 붙들렸을 때 기도한 것이 바로 이 37절이었습니다. 요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그런데 37절 후반을 놓치지 마십시오.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눈을 돌이키는 것으로 끝나면 금욕입니다. 돌이킨 눈이 향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 길잡이가 롯과 아브라함을 나란히 놓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물이 넉넉한 소돔 땅을 보고 그곳을 택했고(창 13:10~1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땅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어디로 가느냐를 결정합니다.
38절,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달라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가 여기서 기도의 문법을 정리해 줍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더 구할 만큼 야심적일 필요도 없고, 덜 구할 만큼 겸양할 필요도 없다."
39절은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그리고 40절,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사모하기는 하는데, 사모하는 힘으로는 못 갑니다. 여기가 아홉 간구의 바닥입니다. 이 사람이 구하는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 원하는 마음까지도 주셔야 한다는 것.
매튜 헨리가 이 연의 결론을 대신 써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게 하신 곳에서는 행하게 하실 것이며, 사모하게 하신 곳에서는 그 사모함을 채우실 것이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규칙을 주시고 알아서 지키라 하시지 않았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이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소원까지 주십니다.
3.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뒤따라오는 것들 (41~48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119:41)
41절부터 연이 바뀝니다.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덟 절이 전부 히브리어 '그리고'(바브)로 시작합니다. 알파벳 순서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바브 글자를 맞추려는 장치가 아니라 이 단락의 요점 전체다. 순서대로 뒤따르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맨 앞에 오는 것이 41절입니다. 헤세드, 곧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과, 궁핍의 매 순간마다 건지러 나서는 구원입니다. 40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41절의 "인자하심"과 "구원"이 그대로 풀어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교한 연결도 있습니다. 39절의 '비방'과 42절 '나를 비방하는 자들'이 히브리어로 같은 어근입니다. 시인이 두려워하던 그 비방에, 하나님의 구원이 대답을 마련해 줍니다.
42절,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성경은 보통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고 합니다. 말씀이 하나님께 가는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43절의 기도가 나옵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이제 순서가 빨라집니다. 44절 순종 —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매튜 헨리는 이 둘을 나눕니다. 끊임없이, 시시덕거림 없이. 그리고 영영히, 물러섬 없이.
"45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6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119:45~46)
45절, 자유입니다. 히브리어 '라하브'는 넓게 트인 공간을 걷는 그림입니다. 어제 32절의 '넓히시는 마음'이 여기서 넓은 걸음이 됩니다. '자유'는 하나님의 법도에서 벗어남이 아니라 법도 안에서 발견됩니다.죄를 섬김은 완전한 노예살이요, 하나님을 섬김은 완전한 자유입니다.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그리고 46절, "왕들 앞에서."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다섯 계단을 밟아 왔습니다. 말해진 말씀은 무엇보다 먼저 내 것으로 받아들여진(41) 말씀, 신뢰된(42~43) 말씀, 순종된(44) 말씀, 찾은(45) 말씀, 사랑한(47~48)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야 왕 앞에 섭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내 것이 되지 않은 말씀은 남에게 전할 말씀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이 시편의 기도를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행 4:29).
그리고 47~48절.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두 절에 '사랑'이 두 번 나옵니다. 말씀을 말하는 입(42~43)과 말씀을 살아내는 삶(44~46)은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사랑은 순서의 끝에 붙은 장식이 아니라 밑에 깔린 바닥입니다.
48절의 '손을 들고'는 대담한 표현입니다. 손을 드는 것은 원래 하나님께 기도할 때의 몸짓인데, 여기서는 그 손이 주의 계명들을 향합니다. 성전과 마찬가지로, 토라는 하나님의 임재가 임하는 곳입니다.
보십시오. 33절에서 아홉 번 내밀던 빈손이, 48절에서 사랑으로 들린 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책 숭배가 아닙니다.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고, 마침내 사람이 되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41절이 구한 그 인자하심과 구원이 임한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39절에서 그가 두려워한 수치를 그분이 대신 지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맺는 말
오늘 묵상 에세이에서 켄 시게마츠 목사는 '영적 비만'을 경고합니다. 어느 젊은이가 하루에 세 교회의 예배를 드리고 이동 중에도 유명 목회자들의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 열심에 감탄했지만 곧 이런 질문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저 친구가 그 모든 정보를 소화하고 있을까?'
누군가 "무디가 성령을 독점하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하고 빈정거리자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성령께서 이 시대에 무디를 독점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말씀은 쌓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소화하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그 힘조차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아홉 번 손을 내밉니다. 가르치소서. 깨닫게 하소서. 행하게 하소서. 향하게 하소서. 돌이키소서. 살아나게 하소서. 세우소서. 떠나게 하소서.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손이 어디까지 갑니까. 자유롭게 걷는 걸음까지, 왕들 앞에 서는 담대함까지, 마침내 사랑하는 계명들을 향해 들린 손까지 갑니다. 오늘 하루, 결단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내민 손을 하나님이 채우십니다.
오늘의 찬양
새찬송가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 오늘의 찬송. "어느 때든지 영원토록 변함없는 거룩한 말씀" — 44절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를 그대로 노래합니다.
〈손을 높이 들고〉 메들리~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나는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심은 자주 하면서, "가르치소서·깨닫게 하소서·행하게 하소서"라고 먼저 기도한 적은 얼마나 됩니까? 오늘 성경을 펴기 전 어떤 기도를 드리겠습니까?
나는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신뢰하고·순종하고·찾고·사랑하는' 다섯 계단 중 어디쯤 서 있습니까? 아직 내 것이 되지 않은 말씀을 남에게 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더빛교회 성도들이 자기 결단의 힘으로 신앙을 끌고 가다 지치지 않게 하시고, 원하는 마음까지 주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 교회가 순종을 속박으로 여기지 않고 넓은 곳을 걷는 자유로 누리게 하시며, 어떤 자리에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