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19편 105-112절, 169-176절
여는 말
지난 주일 우리는 「여덟 개의 종」을 보았습니다. 시편 119편이 하나님의 말씀을 여덟 개의 다른 단어로 부르며 176절 내내 울린다는 것, 그리고 그 여덟 종이 울려 만드는 소리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로 우리는 열이틀의 걸음을 마쳤습니다. 9월 1일부터 12일까지 생명의 삶으로 시편 119편을 다 읽었고, 새벽마다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난주에 여덟 종을 세었는데, 사실 이 시편에는 아홉 번째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여덟 종보다 더 자주 나오는 단어입니다. 길입니다. 히브리어로 '데레크'. 우리말 성경은 이것을 길·도·행위·행실로 달리 옮겨서 한 단어인 줄 알기 어렵습니다. 1절 "행위가 온전하여"의 행위, 3절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의 도, 5절 "내 길을 굳게 정하사"의 길, 168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의 행위가 전부 같은 단어입니다. 비슷한 뜻의 단어들까지 합치면 스무 번이 넘습니다.
그런데 주석가들은 이 단어를 여덟 종에 넣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길은 말씀이 아니라, 말씀이 걸어가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말하는 라이프스타일." 여덟 종은 하나님이 하신 말이고, 길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덟 종을 들은 사람은 어떻게 살다가, 어디에 도착하는가.
1. 두 개의 길 — 주의 길과 나의 길
시편 119편에는 두 종류의 길이 있습니다. 주의 길과 나의 길입니다.
주의 길은 이렇게 나옵니다.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3절), "주의 증거들의 도"(14절), "주의 법도들의 길"(27절), "주의 계명들의 길"(32절), "주의 율례들의 도"(33절).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로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길은 이렇게 나옵니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5절),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26절),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29절),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30절), "내 행위를 생각하고"(59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168절).
그리고 이 시편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길이 주의 길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나의 길과 주의 율법이 겹친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서 시인은 그것이 아직 자기 이야기가 아님을 압니다.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이 '길'이 가장 몰려 있는 곳이 25절부터 32절입니다. 여덟 절에 다섯 번. 25절에서 시인은 진토에 붙어 있습니다.
[시119:26-27]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26절, 나의 길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27절, 주의 길을 깨닫게 해 달라 합니다. 29절, 거짓의 길을 떠나게 해 달라 합니다. 30절, 성실한 길을 택합니다. 그리고 32절입니다.
[시119: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1절에서 '걷던' 사람이 32절에서 '달립니다'. 이 연의 알파벳 달렛(ד)이 데레크(דרך)의 첫 글자이기 때문에 시인이 여기서 의도적으로 '길'을 부각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의 길이 주의 길이 되는 것은 내가 힘써 방향을 틀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을 넓히셔야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결심의 노래가 아니라 기도의 노래입니다.
2. 걸으라고 준 빛 (105~112절)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편에서 가장 유명한 절입니다. 그런데 여기 '길'은 데레크가 아니라 '나티브', 좁은 오솔길입니다. 이 빛을 낭만에서 끌어내리라!
먼저 '등'과 '빛'을 나누어 보십시오. 아마도 등불은 다음 한 걸음을 밝히고, 빛은 앞의 길 전체를 밝힌다." 앨런은 더 직설적입니다. 토라는 "어두운 길을 위한 하나님의 손전등"이라는 것입니다. 손전등은 산 전체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발 앞 한 걸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한 걸음이면 밤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나. 이 빛은 어느 길이 유리한가가 아니라 어느 길이 옳은가를 비추는 빛입니다.
둘. 이 빛은 쬐며 쉬라고 주어진 빛이 아니라 걸으라고 주어진 빛입니다. 성경 공부만 하고 걷지 않으면, 등불을 켜 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119: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그래서 106절에 맹세가 나옵니다. "말씀에 대한 헌신 안으로 우연히 떠밀려 들어가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표류해서 신앙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표류는 언제나 반대 방향입니다.
[시119:111-112]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그러니 마음을 말씀 쪽으로 기울이는 것은 본성의 관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그럴 때 기쁘다!
3. 길의 끝 — 주 앞에 (168절, 169~175절)
이 시편의 마지막 '길'이 168절에 있습니다.
[시119:168] "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1절의 "행위가 온전하여"로 시작한 길이 168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로 닫힙니다. 나의 길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이 사실이 두렵게 들립니까.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위로였습니다. 아무도 그의 억울함을 알아주지 않고 고관들은 거짓으로 그를 몰아붙이는데, 하나님만은 그의 모든 길을 보고 계셨습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그리고 마지막 연입니다. 이 여덟 절을 4 + 4의 대칭으로 읽습니다. 앞의 네 절은 "주여, 들으소서!", 뒤의 네 절은 "주여, 행하소서!"입니다.
[시119:169-170]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이르게 하시고'는 제물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그가 제단에 올려놓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르짖음과 간구입니다. 그에게는 드릴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아온다." "우리는 거지가 동냥을 얻으러 우리 문간에 오듯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시119:175] "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이 절은 찬양이 삶의 목적임을 분명히 인정합니다. 헨리의 문장을 그대로 옮깁니다. "'살아서 내 나라를 섬기게 하소서, 살아서 내 가족을 부양하게 하소서'가 아니라, '살아서, 그 일을 하는 가운데, 다툼과 반대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이다."
4. 잃은 양, 그러나 잊지 않은 자 (176절)
[시119:176] "잃은 양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76절 동안 "내가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라고 노래한 사람의 마지막 말이 "나를 찾으소서"입니다.
왜 길을 잃어버립니까? 끊임없는 유혹과 시험,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꿋꿋이 말씀을 따라, 말씀을 향해 온 길 속에서, 여러 사람과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걸어갑니다.
"방황하나 순종하는!" 176절의 절반은 "내가 방황하오니"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입니다. 이 두 문장이 한 절 안에 나란히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이 시편의 가장 인간적인 진실입니다. 우리는 순종하려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방황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려는 열망이 아무리 커도, 우리는 끝까지 목자의 돌보심이 필요한 잃은 양으로 남습니다. 완전주의에 짓눌린 성도에게는 바로 이 한 절이 복음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동사의 방향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2절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시편은 구하는 사람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 방향이 뒤집힙니다. "주의 종을 찾으소서." 이제 그는 구하는 자가 아니라 찾아지기를 기다리는 자로 섭니다. 176절 내내 하나님을 찾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아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여, 내 양이 길을 잃었을 때 내가 그것을 찾던 것처럼 나를 찾으소서. 나를 찾으소서, 곧 나를 발견하소서. 하나님은 결코 헛되이 찾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5. 길이 되신 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 기도는 이미 응답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우리가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나의 길로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 잃은 양들을 두고 목자를 보내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눅 15:4~5).
보십시오. 찾으신 목자는 양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어깨에 메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176절의 "나를 찾으소서"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 이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105절의 등불이 비추는 그 오솔길, 32절에서 달려가고 싶어 했던 그 계명의 길, 168절에서 하나님 앞에 놓인 그 길이 한 인격이십니다. 히브리서가 이것을 이렇게 씁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20). 주님의 찢긴 몸이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두 가지를 동시에 압니다. 우리는 끝까지 방황하는 양이고, 그러나 우리에게는 길이 되신 분이 계십니다.
맺는 말
열이틀의 걸음이 끝났습니다.
첫날 우리는 "복이 있음이여"(1절)에서 출발했습니다. 어제 우리는 "나를 찾으소서"(176절)에 도착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긴 이 시편은 복의 선언으로 시작해서 잃은 양의 기도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노래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자기가 아님을 알고 목자를 부릅니다. 이 시편은 도달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갈망하는 사람의 노래였고, 끝까지 그러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여덟 개의 종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하나의 길을 보았습니다. 종은 하나님이 하신 말이고, 길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삶입니다. 그리고 두 주 모두 같은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여덟 종이 울려 만드는 소리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우리가 걷고 싶어 했던 그 길의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이 시편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걸으십시오. 등불은 쬐라고 준 것이 아니라 걸으라고 준 것입니다. 인생 전체가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은 보입니다. 그 한 걸음을 걷고, 그다음 한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우연히 떠밀려서가 아니라 마음을 기울여서.
둘째, 찾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잘 걷지 못한 날에도 기도의 자리를 피하지 마십시오. 이 시편의 마지막 말은 "내가 해냈다"가 아니라 "나를 찾으소서"였습니다. 그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목자는 결코 헛되이 찾지 않으십니다.
결단의 기도
우리의 길을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열이틀 동안 시편 119편을 걸어 오늘 그 마지막 절 앞에 섰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길이 주 앞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의 길을 걷고 싶어 하면서도 자꾸 제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마음을 넓혀 주옵소서. 우리 힘으로 방향을 틀 수 없음을 알기에, 주께서 우리 마음을 계명의 길로 기울여 주옵소서. 등불을 켜 놓고 앉아 있는 자가 아니라 그 빛을 따라 한 걸음을 걷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인생 전체가 보이지 않아도 오늘 한 걸음은 보이니, 그 한 걸음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주님, 우리가 잘 걷지 못한 날에도 기도의 자리를 피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는 순종하려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방황하는 양입니다. "주의 종을 찾으소서." 이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받아 주옵소서. 아흔아홉을 두고 하나를 찾아 어깨에 메시는 목자 되신 주님, 오늘 이 자리에 길을 잃은 것 같아 주저하는 지체가 있다면 친히 찾아가 어깨에 메어 주옵소서.
길이 되신 예수님,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그 찢긴 몸으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로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더빛교회가 방황하나 순종하는 겸손으로, 그러나 길이 되신 그분을 붙든 확신으로 남은 날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를 찾으시는 목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