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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 역대상 11장 20-47절

2026.09.19

이름만 남은 사람들

본문: 역대상 11장 20절 ~ 47절

여는 말

어제 우리는 부어 버린 물을 보았습니다. 세 사람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으러 적진을 뚫고 갔다 왔는데, 왕이 그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제 설교를 마치면서 우리가 붙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충성은 위로 흐르고, 지도자는 그 충성을 다시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저는 어제 본문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것 하나를 먼저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세 사람의 이름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갔다 온 세 사람인데, 성경은 그들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 사람"입니다. 이름은 잊혔으나 행위는 잊을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정반대입니다. 오늘은 행위가 없고 이름만 남았습니다. 스물여덟 절 가운데 스물두 절이 그냥 이름입니다. 어디 사람 누구, 어디 사람 누구, 그의 아들 누구. 대부분 무용담이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입니다.

어제는 이름 없는 헌신을 보았고, 오늘은 헌신이 지워지고 이름만 남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 두 가지가 우리 인생입니다. 어떤 날은 한 일은 있는데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고, 어떤 날은 이름은 불리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보겠습니다.

1. 그늘에 가린 사람들 (11:20~25)

"20 요압의 아우 아비새는 그 세 명 중 우두머리라 그가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이고 그 세 명 가운데에 이름을 얻었으니 21 그는 둘째 세 명 가운데에 가장 뛰어나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으나 첫째 세 명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대상 11:20~21)

아비새는 창을 휘둘러 삼백 명을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결론이 "미치지 못하니라"입니다. 그리고 몇 절 뒤에 같은 문장이 또 나옵니다.

"2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므로 세 용사 중에 이름을 얻고 25 삼십 명 중에서는 뛰어나나 첫째 세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 다윗이 그를 세워 시위대장을 삼았더라" (대상 11:24~25)

브나야도 그렇습니다. 두 번입니다.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꼬리표가 붙습니다.

최고 세 영웅을 빼고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늘에 가린(overshadowed)", 곧 다른 이들의 광채 때문에 덜 중요해 보이게 된 사람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 제일 자주 앓는 병이 무엇입니까. 비교입니다. 저 사람은 첫째 세 명이고 나는 둘째 세 명이라는 계산. 저 집사님은 삼십 명 안에 들고 나는 그 바깥이라는 계산.

그런데 보십시오. 역대기 기자가 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지면을 주는지. 특히 브나야입니다.

"22 갑스엘 용사의 손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용감한 사람이라 그가 모압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 또 눈 올 때에 함정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죽였으며 23 또 키가 큰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이요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으나 그가 막대기를 가지고 내려가서 그 애굽 사람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죽였더라" (대상 11:22~23)

"용감한 사람"이 히브리어로 라브-페알림(רַב־פְּעָלִים)입니다. '행하다', '일하다', '성취하다'라는 뜻의 동사 파알에서 나온 명사의 복수형에 '많다'는 말이 붙은 구문입니다. 파알은 일상적인 동작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여 만들어 낸 뚜렷한 결과물, 혹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만한 중대한 업적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시편과 선지서에서는 거의 창조주 하나님의 장엄한 사역을 묘사하는 데에 대부분 쓰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리키던 단어가 한 사람에게 붙었습니다. "업적을 많이 남긴 자"라는 뜻입니다.

눈 오는 날,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를 죽였습니다. 사자가 구덩이에 빠졌으면 그냥 두고 가도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려갔습니다. 눈이 오는 날에.

그리고 애굽 사람. 키가 다섯 규빗, 약 2미터 25센티미터입니다. 손에 든 창은 "베틀채 같으나." 골리앗과 같은 애굽사람. 브나야가 손에 든 '작은 막대기'와 이 거인이 손에 쥔 '거대한 창'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를 상기시키면서 다윗이 수행한 성전이 그 부하들에게도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브나야는 "자기 왕이 했던 일을 자기 자리에서 반복한 사람"입니다. 왕이 물매 하나로 이겼듯이, 이 사람은 막대기 하나로 이겼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삼상 17:47)

"참된 용기는 무기가 아니라 믿음에서 나옵니다. … 손에 쥔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가 역전을 일으켜 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세상의 창은 전리품일 뿐입니다."

다윗이 이 사람을 "시위대장"으로 세웁니다. 히브리어로 알-미쉬마토(עַל־מִשְׁמַעְתּוֹ)인데, '듣다', '청종하다'라는 뜻의 동사 샤마에서 나온 말입니다. 문자적 의미는 '청종하는 무리', '듣는 기관'입니다. 다윗이 뛰어난 용사 브나야를 경호 책임자로 배치한 것은, 최고 권력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심 기제가 용맹함이나 능력보다 청종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사자를 죽인 사람의 새 직함이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서 승진의 방향이 이렇습니다. 능력이 커질수록 더 크게 듣는 자리로 갑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 20:26)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2. 이름만 남은 사람들 (11:26~41a)

"26 또 군사 중의 큰 용사는 요압의 아우 아사헬과 베들레헴 사람 도도의 아들 엘하난과 27 하롤 사람 삼훗과 블론 사람 헬레스와 28 드고아 사람 익게스의 아들 이라와 아나돗 사람 아비에셀과 29 후사 사람 십브개와 아호아 사람 일래와 30 느도바 사람 마하래와 느도바 사람 바아나의 아들 헬렛과" (대상 11:26~30)

다섯 절 안에 열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열 사람 가운데 우리가 아는 사람은 한 사람뿐입니다. 아사헬. 그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아브넬의 창에 죽었다는 것을 압니다(삼하 2:23).

나머지 아홉은 무용담 한 줄 없이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엘하난, 삼훗, 헬레스, 이라, 아비에셀, 십브개, 일래, 마하래, 헬렛. 무엇을 했는지 모릅니다. 언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가운데 여러 사람이 역대상 27장에서 다윗의 월별 지휘관으로 다시 나옵니다만, 여기서는 이름만입니다.

그들은 "기억되지 않는 자들(The unremembered)"입니다. "무명"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이름은 알기 때문에. 이름조차 모르는 더 많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왜 하나님은 이 이름들을 성경에 남기셨을까요. 아무 이야기도 없이, 아무 설명도 없이, 그냥 이름만.

역대기 기자는 용사들의 이름을 기록하면서 출신 지역, 지파, 민족적 배경 등을 밝힙니다. 베들레헴, 기브아, 갈멜, 베냐민, 르우벤… 이렇게 출신과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나의 왕국을 세워 갔습니다.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했다는 의미입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신실하게 섬기면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것이 공동체에 관한 성경의 원리입니다."

이름만 남았다는 것은, 그가 자기 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의 등극에 있어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이스라엘의 온전한 참여를 보여주는 것은 개개인이 아니라, 50개가 넘는 그들의 이름이 함께 빚어내는 효과입니다.

이 명단은 원래 사무엘하 23장에 있습니다. 거기는 다윗 이야기의 맨 마지막 부록입니다. 다윗이 다 늙고 다 끝난 뒤에 "참,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 하고 덧붙이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그 명단을 여기로 끌어왔습니다. 다윗이 막 왕이 된 자리, 11장 10절 바로 뒤로.

"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대상 11:10)

사무엘하에서는 "다윗을 위해 싸웠던 옛사람들"이었는데, 역대기에서는 "그를 왕으로 삼고 세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울 시대부터 다윗을 위해 사람들과 군대를 준비하셨으며, 다윗 왕권이 온 이스라엘의 헌신적 지원 속에서 세워졌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난 몇 해 동안 이 교회에서 한 일들 —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문을 열었던 일, 아픈 지체를 찾아갔던 일, 말없이 채워 넣었던 헌금 — 그것이 여러분 인생의 부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편집에서 그것은 본문 한가운데로 옮겨집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

땅의 명단에서 빠진 이름도 하늘의 명단에는 있습니다.

3. 명단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11:41b~47)

"39 암몬 사람 셀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무기 잡은 자 베롯 사람 나하래와 40 이델 사람 이라와 이델 사람 가렙과 41 헷 사람 우리아와 알래의 아들 사밧과" (대상 11:39~41)

"46 마하위 사람 엘리엘과 엘라암의 아들 여리배와 요사위야와 모압 사람 이드마와 47 엘리엘과 오벳과 므소바 사람 야아시엘이더라" (대상 11:46~47)

이제 이 명단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암몬 사람 셀렉, 모압 사람 이드마, 헷 사람 우리아.

암몬과 모압 사람은 율법이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한 백성이고, 헷 사람은 진멸 대상이던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하나입니다(신 7:1).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신 23:3)

"심지어 암몬(39절), 헷(41절), 모압(46절) 등 이방 민족 출신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출신과 배경이 아주 다른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나의 왕국을 세워 갔습니다."

41절 후반부터 47절까지 열여섯 명이 역대기에만 있는 추가 명단인데, 여기에는 요단 동편 출신과 비이스라엘 사람들(모압, 소바)이 대거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로기 이후 공동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다윗왕국을 함께 세웠습니다.

사무엘하 23장에서는 이 명단의 맨 마지막 이름이 헷 사람 우리아입니다. 다윗이 죽인 그 사람입니다. 다윗이 그 아내를 빼앗고, 편지 한 장으로 최전선에 세워 죽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이름이 다윗의 충신 명단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이 이름은 신약으로 이어집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6)

마태복음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거기 우리아의 이름이 있습니다. 왕의 죄가 지워지지 않았고, 죽은 자의 이름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명단이 그리스도께로 흘러갑니다.

오늘 이 이방 이름들이 무엇을 말합니까. 왕의 명단은 혈통으로 닫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 2:13)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마지막날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도 예수님을 전합니다.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오늘 아침 세 가지를 붙들고 나가십시다.

첫째, 그늘에 가린 것은 이등급이 아닙니다. 아비새와 브나야에게 두 번이나 "미치지 못하니라"가 붙었지만, 성경은 그들에게 가장 긴 지면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죽인 사람을 '듣는 자리'에 세웠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신실하게 섬기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자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자리를 감당하는 충성입니다."

둘째, 이름만 남았다는 것은 그가 자기 자리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명단을 인생의 부록에서 본문 한가운데로 옮기셨습니다. 사무엘하 23장이 역대상 11장이 된 것이 바로 그 일입니다.

셋째, 왕의 명단은 혈통으로 닫히지 않습니다. 암몬 사람이, 모압 사람이, 헷 사람이 거기 있습니다. 율법이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리라" 한 암몬과 모압 사람이, 진멸 대상이던 가나안 족속 헷 사람이 왕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어디서 만납니까.

오늘 본문에서 가장 크게 칭찬받은 사람 — 브나야는 막대기 하나를 들고 거인에게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거인의 손에서 창을 빼앗아 그 창으로 그를 죽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 2:14~15)

원수의 무기를 빼앗아 그 무기로 원수를 이기셨습니다. 사망으로 사망을 멸하셨습니다.

십자가라는 저주의 나무가 구원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4~15)

그리고 그분이 그 일을 하실 때, 그분 곁에 첫째 세 사람도 없었고 삼십 명도 없었습니다. 다 도망갔습니다. 그분은 혼자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 이기신 그분이, 지금 명단을 만드십니다. 우리 이름을 적으십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이름만 남은 사람들 —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 우리 왕이십니다.

생명의 삶 묵상 에세이 「하나님 손에 붙들린 '빈 그릇'」이 오늘 이렇게 권합니다.

다윗 왕국의 용사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높은 자리를 탐내며 싸우지 않았고, 오직 왕을 위해 곧 하나님 뜻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충성했으며, 그 이름 없는 헌신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든든히 떠받쳤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어디에 서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손에 붙들린 '빈 그릇'이 되는 일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알고 충성하는 사람은 주님께 기꺼이 쓰임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다." 맥스 루케이도

오늘 하루, 여러분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그 자리에서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이 기록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찬양

### 새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 — 오늘 본문의 용사들이 물음 앞에서 한 대답이 바로 이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믿음으로 서리라 — 내게 맡겨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때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게 된다.

오늘의 개인 적용 질문

1. 아비새와 브나야에게는 "첫째 세 명에게는 미치지 못하니라"가 두 번이나 붙었습니다(21, 25절). 지금 내가 나를 누구와 비교하며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 비교를 내려놓고 오늘 내 자리에서 감당할 한 가지 충성은 무엇입니까?

2. 11장 26~47절의 이름들은 무엇을 했는지 기록되지 않았고 오직 이름과 출신만 남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계속 지키고 있는 자리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 자리를 이미 기록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오늘 나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

1. 더빛교회 안에서 이름이 불리지 않는 자리를 지키는 모든 지체들 — 뒤에서 준비하고, 먼저 와서 치우고, 끝까지 남아 정리하는 손들 — 을 기억하여 주시고, 서로를 첫째와 둘째로 세지 않고 한 마음으로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2. 우리 교회의 명단이 혈통과 배경으로 닫히지 않게 하소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헷 사람이 왕의 용사 명단에 있었듯, 우리와 출신과 형편이 다른 이들이 이 공동체 안에서 자기 이름으로 불리고 자기 자리를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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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Wilcock(BST) 11:20–25 "그늘에 가린 자들(the overshadowed)"·"이류도 이등급도 아니다"·제2바이올린 인용·11:26–47 "기억되지 않는 자들"과 "이름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거의 유일한 것"·딤후 2:19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왕의 봉사에는 각 사람 모두를 위한 자리가 있다, Selman(TOTC) 11:22 "아리엘"의 두 독법·명단의 지리적 순서(유다→북쪽→비이스라엘→요단 동편)·11:41 우리아의 이름이 시사하는 인원 변동·"삼십"은 탄력적 숫자 혹은 직함, Braun(WBC) "오십이 넘는 이름들의 누적 효과"·아리엘을 외국 군 지도자를 가리키는 기술 용어로 봄(메사 비문 12행)·"셋/삼십/장관"의 혼동은 문학적 단위로 의도되지 않은 항목을 단위로 읽으려는 데서 생김, Hill(NIVAC) 11:20–25 삼인과 삼십인 사이의 특별한 지위·요압의 부재는 총사령관이기 때문·브나야는 경호대장·용사들은 "저속한 용병이 아니라 전문 군인"·11:41b–47 명단 연장의 신학적 동기는 "추측만 가능", Japhet(OTL) 브나야가 이 편찬의 중심 인물이며 애굽 사람과의 전투가 다윗–골리앗 이야기에 동화됨·11:41b–47의 요단 동편·비이스라엘 요소는 후대 창작으로 설명되지 않음·"삼십인"은 다윗 통치 내내 갱신되었을 것 / 생명의삶 2026년 9월호 19일자 (본문 해설 「아비새와 브나야」·「다윗 군대의 용사들」, 묵상 에세이 「하나님 손에 붙들린 '빈 그릇'」 이재철·맥스 루케이도 인용, 한 절 묵상 11:23), 생명의삶 플러스 19일자 (설교 길잡이 「헌신으로 세워진 하나님 나라」, 예화 클립 도산 안창호의 정성, 한규삼, 원어 연구 할랄·니크바드·라브-페알림·알-미쉬마토, 문장/문맥 연구 11:20·22·23, 본문 주해 11:20~47)*